경향신문 11월 8일 字:     http://newslink.media.daum.net/news/20081107172406592

이권우(도서 평론가)의 자서전 읽기

[자서전 읽기](9) 벤저민 프랭클린의 ‘프랭클린 자서전’

(전략)...

베버의 분석을 따라가다 보면, 프랭클린은 '자본주의의 벨 에포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자본주의가 역사의 우세종으로 자리잡은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신분질서에서 벗어나 근면과 성실로 무장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물론 새 생명의 탄생에는 핏자국이 반드시 남게 되어 있다. 본원적 축적과정에서 희생된 약자들의 비명을 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역사는 자본주의 체제가 더 낫다고 판단했고, 이에 다수의 사람이 동의했다. 자본주의는 봉건주의에 죽음을 선고하고 발전한 것만이 아니다. 가장 강력한 짝패였던 사회주의와 벌인 싸움에서도 승리했다. '역사의 종언'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 프랭클린 자서전 > 은 개인의 신화에 그치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역사에서 거둘 성공의 '예고편'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러한 것일까. 프랭클린의 신화는 따라만 하면 누구나 성취할 수 있는 것인가.
노명우는 <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노동의 이유를 묻다 > 에서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는다. 그는 오늘 우리 곁에 프랭클린이 다시 살아났다고 말한다. 뚱딴지같다고 통박부터 놓지는 말 것. 프랭클린 플래너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성찰해보라는 것이니. 자본의 축적방식이 바뀌었다는 것은 두루 알려진 사실이다. 고용 없는 성장이 이를 입증한다. 이런 시대에 일하는 사람들은 고용불안에서 벗어나려고 자기계발에 강박적으로 매달리게 되어 있다. 시간 관리의 중요성이 높아지자 프랭클린 플래너가 주목받았다. 노명우는 이를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테일러리즘을 어떻게 스스로 적용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파악한다.

희망의 상징이었던 프랭클린이 불안의 그것으로 대체되었다. 검약과 근면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자본주의는 소비와 낭비 없이는 유지되기 어려워졌다. 자본주의 정신이 있기에 자본주의가 가능했는데, (금융)자본가들이 자본주의의 토대를 치명적으로 허물고 있다. 어디에도 자본주의를 위협할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마르크스의 말을 비틀면, 모든 견고한 것들은 사라진다 하더니, 내파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진정 누가 자본주의의 적인가? < 프랭클린 자서전 > 은 오늘의 우리에게 절박한 문제의식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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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이었다.
프랭클린의 삶은 그가 이루어낸 것을 빼고서라도
진실됨, 겸손, 부지런함, 정의 같은 현실속에서


작금의,,,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대로 성공하고 부자가 될 수 있다"
는 류의 책들이 베스트 셀러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일 것이다...
인구는 많고 나눌 수 있는 부는 한정되어 있으니,
동물의 왕국에 출연하는 한 마리의 조연으로서는 ,,,
못내 아쉬운 것이다.
자기 예언, 자기 암시를 통해서라도 위안을 얻고 싶어하는 것인데,
굳이 긍정적이고 신념에 찬, 밝은 자아상으로 살아가려는 것을
냉소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 그것을 통해 무언가의 성취를 이루는 것도 부정할 수만은 없을테니,,,
그런데도 왠지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Posted by 메모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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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님의 동영상을 보았다.
처음 듣는 단어 과보, 업식

"일어나야지 하는데 몸이 안 따라주어서 매번 못일어나는데,,,,"  하는 상담 내용.
"일어나야 되는데,,,"하는 생각
옆에서 총을 쏘면 당장 일어날 것이다.
딱 일어나버리면, "일어나야 되는데,,"하는 생각은 더이상 생기지 않는 것처럼.
몸이 아니라
ㅡ몸은 색즉시"공"일 뿐, 그 자체로 아무런 잘못이 없잖나ㅡ
마음,생각이 내는 것
"일어나야 되는데,," 하는 생각을 일으키기 전에 일어냐야.
그 생각 자체가  "업식"을 따라 가는 것이다
그냥 내처 자는 것보다도 더 하수.
일어나야 겠다는 결심,생각 없이 그냥 푹 자고 일어나면 괴롭지라도 않지.
잠은 잠대로 푹 못자고 마음은 괴롭고ㅡ 못일어났으니
어리석음.
과보(후회하는 고통이 생겼으니ㅡ더 큰 고통이다)가 따르게 되니,,,
이 과보를 벗어나려면 업식을 거슬러야.
업식ㅡ무의식의 속삭임, "꼭 해야되나,," "여지껏 안 하고도 잘 살아왔는데,,,"
일어나지 않아서 생기는 더 큰 고통을 멸하기 위해서 대결정심(고치려는 생각으로 딱! 끊는것)
을 발동해야한다.
(싫으면 안 하면 되고, 하고 싶으면 하면 되는 것, 일어나기 싫으면 늦잠자면 되고, 늦잠자서 지각하면 혼나면 되고, 회사에서 쫓겨나면 나가면 되고,,,,이렇게 살면 계속 그 진탕속을 살다가는거겠지)
어차피 "(마음)공부"하는 사람은 1%
99%는 안하고도 사는데...

이런 까닭에 행자와 사미승에겐 개인방 안주는 것
독방에서 자면 혼자 못일어나,,,100명이 같이 자면 생각할 겨를 없이 자기도 일어날 수밖에 없으니

더 큰 고통을 멸하기 위해.
계속해서 습관에 끌리는 ㅡ아무리 이런 업식이 있어도
대결정심 발동하면 딱 끊게 되는 것. (해서 사주팔자 지가 만들기 나름이라는 것)
못 고치는 게 아니라
고치려는 생각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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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뭐,," 하며 그냥 습관대로 해버리는 평소 모습.
결국 그러다가 여기까지 온 거다.
즉물적으로 감각적으로 말초적으로 편한 대로 살다보니 여기까지 흘러온 것.
대결정심을 내지 않으면,
폐인의 길이 불을 보듯 뻔하다.
죽을 때 "아,,,그렇게 하면 안되는 거였는데.."하고
골백번 후회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아직 기회가 시간이 주어졌을 때
탁 끊어버리는 ,딱 고쳐버리는  생각.마음. 을 넘는 행동. 습관.
내가 본디 갖고 있는, 또는 스스로 습관화시킨 업식?에 따라 과보?를 만들면
그야말로 축생만도 못한 인생이 되는 거다
고쳐야 산다





Posted by 메모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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