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무슨 부모와 자식관련 다큐나옴.
(제목: "마더쇼크")
자기가 부모로부터 들었던 말을 그대로 아이한테 하고 싶어하는 ...
받았던 스트레스를 그대로 자기 아이한테 푸는.
내가 너 그럴 줄 알았어...
아이에게 엄마는 24시간 내내 켜져있는 광고와 같다
어머니와 아기의 애착 유형은 75% 일치.
ㅡ연구 결과
3세대의 애착과 안정성.
어머니와 태어난 아기와의 일치.
어머니와 친정어머니와 일치 다 75% 초과.
"대물림"
미혼일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억이 잠을 자고 있기 때문.
자신이 엄마가 되면서 기억속에 묻혀있던 것들이 나옴.
친정엄마에 대한.
"니 엄마한테 쌓인게 많제? 그렇제?"
...딸은 답변을 얼버무림... 그냥 그래요,,,
그냥 아무런 생각이 안 들어요. 마음이 전달이 안 되는 듯해요. 그냥 책읽어 주는 느낌..
친정엄마를 닮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처왔다.
매일 책을 읽고 끊임없이 연습했다. 그런데 애가 울거나 하면,,
(어릴때 부모님이 저를 때리실때)
갑자기 돌변하는 눈빛이 있으시거든요.
너무 화가나서 저를 때리는 순간.
불같은게 나오는 느낌을 경험했거든요.
(자기도 아이한테 그럴때,) 아차 싶거든요.
겊으로 볼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엄마입니다.
그냥 불현듯이 아이가 잘 놀고 있는데
아이를 한번 때려보면 반응이 어떻게 나올까 궁금한 거예요.
그 생각을 계속하고 있다가 아차하는 순간 내가 미쳤구나.
정신이 번쩍들면..진짜로 하면 어떻하지?
엄마들이 느끼는 대물림의 실체는?
어릴시절 경험한 부정적 정서와 깊은 연관...
30 40대 주부들이 울면서 얘기함.
자기가 엄마한테, 엄만 날 사랑한적이 없는 것 같애.
나 좀 사랑해줘.
내가 원한 것은,,,,, 졸업식에 가주고 입학식에 가주고 따뜻한 도시락이었는데
좀 안아주지....안아주는게 뭐가 힘들다고...
(다들 흐느끼면서 말함)
정서적 대물림.
어린 시절 긍정적 정서
건강한 애착 발달이 없으면,
낮은 자존감. 자신감. 앞으로의 삶을 살 때 있어 중요한 원동력인데
건강하지 않으니 삶의 적응성이 떨어짐.
몸과 마음에 각인. (뇌에까지 직접 영향)
타인. 거울 신경세포. 공감 뉴런 거울 뉴런
정서적 보살핌 어릴 때 못받으면 거울 뉴런 발달 못함.
공감능력.
사회생활, 인간관계, 자녀양육 때 큰 영향.
애가 막 울때의 표정이 너무 보기가 싫어요.
우는 애를 놔두고 저 방에 가요.
막 감정을 토로하다가
내 동생이 그렇게(장애안고) 태어난 것도 나때문이라고 했다.
애가 울면 화가 폭발한다.
어린 시절 경험한 정서적 상처때문.
나안에 상처받은 아이가 있다.
엄마가 너무 원망스럽고 분노했다. 그걸 치료하지 않으면 내 아이가 그대로 전해질 것 같다.
미해결 과제 어린 시절 경험 중 해결되지 않고
상처받은 아이는 엄마 마음 속에 살고있다.
아이가 우는 상황. 엄마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름
화가 남. 창피해 미안해 불편해
초감정 meta emotion
미해결과제가 마음 속에 있어.
대물림이 되니까,,
그래서 자꾸 친정엄마를 원망하게 된다.
(친정엄마)어릴 때 잘 울었어요.기억나는게 울면서 토하는 거. 그때 생각하면 좀 안됐죠.
(애엄마) 그걸 드러내면 엄마가 불편하고,, 엄마한테 드러낼 수가 없었어요.
어릴 시절 상처를 받았다고 모두 대물림이 되는 건 아니다.
75%정도는 극복, 나머지 25%는 극복이 잘 안되어 치료가 필요하기도.
그 25%.
2단계: 친정어머니의 시대적 상황 이해하기.
무능한 할아버지. 억척스런 할머니
가부장적 아버지.
외도한 외할아버지. 냉정한 외할머니.
내 안에 안 크고 상처받은 아이가 그대로 있어서 원망스러운 마음이 늘 있었던 것 같다.
(친정엄마) 아이한테 표현을 잘 안했어요.
3단계: 부정적 대물림 끊기.
사랑받지 못하고 상처받은 아이.
대물림 or 새롭게 살아갈지 : 온전한 자신의 몫
여기서는 선택의 문제예요.
무엇을 취할까 버릴까는 자기 선택. 부모세대에게 책임전가할 이유가 없다. 자신이 자식한테 어떻게 하느냐는.
친정엄마와 아기 엄마의 대화 시간을 마련해 보여줌.
아기를 키우며 힘들때 엄마를 원망했음.
우리 자식 넷 중에서 스트레스를 푸는대상이었어요.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죠...
4단계 긍정적 자산 만들기,,게임을 통해,,어쩌구,,,
5단계 긍정적 자산 만들기,, 장점일기를 통한 어머니 효능감
아이의 작은 실수에도 못 마땅했고,
지금은 그런일이 없습니다.. 전에는 폭발을 시켰다면,,,,, 먼저 조금 터트려서 피시식하게,,.
아이가 울면 어쩔 줄 몰라했던 누구씨,
아이를 보는 시각도 짜증대신에,,,웃을 수 있게 변한 것 같아요.
어린 시절의 경험, 모성에 영향,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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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은 정서적 사고와 공감능력이 강함.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가능.
한국 사회의 남자들을 소재로
이런 프로를 만드는 것은 어려울 듯.
자신의 약한 모습이 남에게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니.
속으로만 앓거나 그냥 무시.
강하게 무시함으로써 극복되는 것들도 많으니. 프로그램에 나온 통계, 여성들 75%처럼.
어릴 때 아버지한테 항상 골프채로 맞았다던 사람 얘기가 생각남.
대부분은 다 그냥 묻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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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코패스의 공감능력 결여 생각남.
겉으로는 예의바른 범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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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생존 자체만이 문제.
종전후 먹고 사는게 문제인 시대.
독재와 민주주의 문제. 거대 담론의 시대에서.
90년대. 개인주의 시대.
그리고. 개인의 정서와 감정에까지 ,,신경쓰는 tv 프로그램까지 만들어지는 시대.
ebs의 교사들에 관한 문제, 부모와 자녀들의 문제, 부부의 문제.
개인의 내면 문제까지로.
2000년대 20,30,40대 심리학, 개인의 감성과 정서, 관련 책들이 만개한 것처럼.
굉장히 섬세해졌다. 미시적으로 들어간.
더 생각을 해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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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엄마로부터 아이 엄마에게로.
부모로부터 자녀에게.
교사에게서 학생에게로.
기성세대에게서 자라나는 세대에게로.
정서와 감정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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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뿌리는 6.25
수구 냉전 논리 VS 300만 한민족이 죽은 전쟁의 책임.
조선일보의 증오는 일본에 대한 것보단 북한에 대한 것이 훨씬 더 큰 것은 명백하다.
생각하면 한편으론,,
내가 그 수많은 납북 희생자들의 가족이라면.
KAL기 폭파, 아웅산테러,,,수많은 북한 테러와 도발의 희생자 가족이라면.
그 증오를 자식과 후손에게까지 교육하지 않을까. 조선일보 보다도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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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1997년 TV에서 나왔던
대통령후보 사상 검증 토론회.
방송사 생중계되었던.
TV에서 보면서 어떻게 이런 생중계가 가능할까 했던...
주최는 "한국논단".
그 광고 제목만 보고도 친구와 얘기하며 어이없어 했던. 한국논단.
지금 생각해보니,,
차마 그렇게 대놓고 하지 못하는 조선일보 대신,
그 전위조직인 한국논단이 얼굴마담으로 주최했던 것.
이도형. 오제도.
세월이 흘러, 한국논단 대신 조선일보가 직접 몸으로 뛰어도 거스를 수 없는 흐름.
이 힘에 대해 한번 또 친구와 얘기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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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만명 죽은 보도연맹 사건 위키 中:
보도연맹 사건
http://ko.wikipedia.org/wiki/%EB%B3%B4%EB%8F%84%EC%97%B0%EB%A7%B9_%EC%82%AC%EA%B1%B4
학살에 저항한 사람들:
충북 영동군 김춘옥, 김노헌 부부
보도연맹원 학살 당시 양심에 따라 학살에 저항한 사람들이 있었다. 보도연맹원 학살이 있었던 1950년 김춘옥(86),김노헌(당시 39살·1963년 작고)부부는 충북 영동군 용산면에서 경찰의 보도연맹원 학살로 죽음이 임박한 사람들을 도왔다. 김춘옥, 김노헌 부부는 운영하던 양조장 즉, 술을 빚는 곳이 군수·서장 따위 관내 기관장이 이 지역을 방문하면 들를 정도로 유명한 곳임을 이용해서 마을 공동 가마니 창고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던 50여명을 탈출시켰다. 당시 39세이었던 김노헌씨는 영동경찰서 용산지서 경찰들에게 술과 부인 김춘옥 씨가 서둘러 잡은 19마리의 닭고기로 대접하여 헛소리를 할 정도로 취하게 한 다음, 탈출시켰다. 당시 26세였던 김춘옥 씨의 증언은 이러하다.
“ | “그렇게 술 취해서 모두, 막 헛소리하는 사람들은 인제 술이 많이 취한 사람들이지. 그렇게 인제 뭐를 사러 간다고 그 양반(남편)이 나가서, 그 자물통을, 그 사람들(경찰)이 잠가서, 그 사람들이 열쇠를 가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드라이버로 빼고, 그 사람들을 다 얼른 나가라고, 여기 있으면 죽는다고. 그때 다 총살시킨다고 했거든요.” | ” |
혹시 탈출시킨 것을 눈치챌까봐서 김노헌씨는 그냥 못질을 해서 놔두었는데, 다행히 경찰들이 정신이 없던 터라 보도연맹원들이 도로 잡혀와서 학살당한 일은 없었다.
[편집]충북 영동의 이섭진 용화지서장
충북 영동의 이섭진 용화지서장(당시 29살·1989년 작고)은 부인 박청자 씨(당시 29살·1979년 작고)가 "죄없는 사람을 죽일 것이냐"라며 설득하여 보도연맹 주민 40~50명을 놓아주었다. 이 일로 그는 1961년 비위경찰로 몰려 경찰일을 더이상 하지 못하게 될 때까지 변두리에서만 일해야 했고 그나마도 감시를 당했다. 이후 3년간 옥천에서 광산 관리자로 일한 이후로는직업을 갖지 못했다. 자신의 양심때문에 스스로 고난의 길을 걸어간 것이다. 하지만 이섭진씨가 영동에 돌아왔을때 마을 주민들이 환영대회를 열어주고,돈을 스스로 거둬 감사비가 세워질 만큼 지역공동체에서는 대단한 존경을 받았다.[17]
위키 링크 한겨레: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7607.html
60년 만에 만나는 한국의 신들러들 [2010.06.25 제816호] |
[특집] 김춘옥, 김노헌, 박청자, 이섭진, 안길룡, 백남길, 박남도… 한국전쟁 당시 자기 목숨을 걸고 이웃의 생명을 살린 이들의 이야기 |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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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김정운 교수나오고 있음.
알고보니 김선도 목사 아들.
국민일보
<인터뷰> 김선도 광림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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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issionlife.kukinews.com/article/read.asp?gCode=mis&arcid=0005418957&code=30401100
스무살때 즈음 만났던. 광림교회 다니던 그 친구 생각남. 과묵하고 신앙심 깊었던.
그 얼굴만 기억에 남아있다. 이름도 생각이 안난다.
이름은 전혀 생각이 안나고 얼굴 표정, 목소리,, 기억에 남아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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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11909.html
[세상 읽기] 세습의 문화 / 김동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