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의 앞으로의 인생이 그려짐.

한 회사의 자본가나 CEO의 대리인으로서 고용된 후.

그 경직된 리더쉽 방식 고수.


감성적으로는 자기 충족적인 그 폐쇄 구조 속에서,

몇몇 문학적인 문장을 인용하고

적당한 레토릭과 섞어 자신의 감성을 되새김질하는.


의식적으로 끄집어내어 스스로에게 문제 제기하지 않는 이상,

마음 깊은 곳엔 그 충돌, 불일치에서 나오는 괴로움이 지속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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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얘기한,  백지연 피플인사이드ㅡ 이석기 인터뷰.  2012. 5.

흥미롭게 봄.

역시 예상했던 대로 종교적 필을 물씬 풍기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당원들은 보통 사람들하고 다릅니다정말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인 새로운 세상 돈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이 중심인 소박하게 일 하는 사람들이 주인된 세상을 건설하려고 뛰어든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이 진보 정당이 근간은 "진성당원제"라고 우리나라의 유일한 정당입니다. 당원들에 의해서 운영되는 정당이거든요

백지연: 당원이 굉장히 중요하신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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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연: ,,, 국민을 대표합니까, 당원을 대표합니까? 이건 제가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 여쭤보는거예요

이석기: , 전 구분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려 한 것은요. 그게 좀 적절한 비유는 아닌데 옛날에 TV에 무슨 체험 생활 현장 이런 거 있잖아요. 노동하면서 근로하는게 힘들다 땀 흘리고 그 사람들에게 통용되는거다. 우리 진보 정당의 당원들은 다 국민이에요. 그러니까 당원과 국민을 구분하는 것 자체를 전 인정하지 않습니다.

백지연: 굉장히 명확히 할 부분은 있어요. 예를 들어서 여론에 대해서는 여론의 움직임이 이러해도 우리 진성당원의 뜻이 반하면 나는 사퇴할 수 없다. 

이석기: 아니 사퇴할 권리가 없는 거예요. 정확히 말씀을 드리면 제가 스스로 사퇴할 권리가 없어요. 우리 당원들에 의해 선출된 사람이면 해임권한도 당원들에게 있는 겁니다. 

백지연: 네, 그 말씀은 당원으로서 제가 수긍이 됩니다. 그런데 아까 말씀하실 때 우리 당원들은 참 특별하거든요 말씀하셨는데, 통합진보당 뿐만이 아니라 새누리당 민주당 어느 당에도 소속되지 않은 당원들 아닌 분도 굉장히 많으시거든요. 그분들 진짜 특별해요. 진짜 열심히 일하세요. 

이석기: 네, 맞습니다. 

백지연: 그분들의 생각도 굉장히 중요한 것 아닌가요? 

이석기: 그 점은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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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이석기 얘길 들어보면,)

세상에 대한 불신같은게 깔려있고 자기네 것은 합리화시켜서 논리를 만들고.

그걸 집요하게 물어보면 감성적인 걸로 회피. 당원, 사람,,, 이런 식으로.

외부에 대해 물어보면 악마와 싸우는 천사의 개념.

,,,

사람이란게 참 신기한거 같다.

,,,

경직된 그 내부의 연대의식.

종교적 상태까지 연결.

자신들 외의 외부세계는 적으로 돌리고,

현실에서 당장은 힘을 발휘 못해도 우리는 고귀한 정신을 갖고 있고.

고귀하게 그 가치로서 살아남아야한다.

유리알 같은 맑은 정수를 자신들이 갖고 있다는,,,

세상은 적으로 보고,

우리는 고귀한 것으로 보고.


고귀한 가치와 동기.

끈끈한 정.

눈물 글썽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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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탈북 그 후"

새터민 청소년 생활공동체 "우리집". 여름. 캠프.

탈북 청소년 얘기:

북한에선 친구 관계 정말 친하다. 

근데 남한에선 다른 사람을... 자기가 어떻게 되기 위한 수단,  어떤 과정으로 생각하는거 같다.

앞으로의 소망ㅡ  정말 OO한 친구를 사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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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재영 /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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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2500년 전에 플라톤이 물었던 존재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

그는 왜 이렇게 말을 비비 꼬았을까?

대체로 언어를 변형시키는 것은 시인의 몫이지 철학자의 몫은 아니다. 

때로 시인은 자신이 원하는 말을 찾지 못하면 말을 비튼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시어에는 일상적 언어와는 다른 어떤 울림이 있다

하이데거는 철학이 시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철학적 사유는 익숙하고 명료하며 질서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낯설고 모호하며 당혹감을 안겨준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철학이 명료한 체계를 우선하는 과학보다는,

모호하지만 울림을 주는 예술에 보다 가깝다고 말한다.

그는 시작(詩作)을 ‘철학의 누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또한 그는 독일의 낭만파 시인 노발리스(Novalis, 1772-1801)의 시구를 빌어서

 “철학은 향수이며, 어디에서나 고향을 만들고자 하는 하나의 충동”이라고 이야기한다. 

...

데카르트 이후의 철학은 이 점을 망각하고 잘못된 길로 접어들었다고 진단한다. 

우리는 철학에 ‘관해서’ 이야기했을 뿐, 

‘철학에서부터’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세계는 단지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아니다.

과학적 탐구만으로 세계는 온전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간파한 것처럼 세계는 숨기를 좋아한다.

더욱이 과학적 탐구 방식으로는 결코 해명되지 않는 존재 양식을 가진 존재도 있다.

바로 인간이다.

...

하이데거는 철학적 사유의 근원을 존재에 대한 물음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그는 철학으로부터 시작하는 물음은 항상 형이상학적 물음이라고 강조한다.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형이상학적 물음은 가장 궁극적이고 포괄적이다.

철학은 오로지 철학함으로서만 존재하며, 

그 점에서 철학은 결코 형이상학적 물음과의 대면을 회피할 수 없다.


세계를 온전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하이데거는 현상학을 동원한다.

...

도대체 무슨 뜻인가? 

...

물리학적 시각에서 볼 때, 이러한 사물은 분자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생물학의 눈으로 볼 때, 강낭콩 잎과 구더기는 DNA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시인의 경험에서 원자나 DNA는 자신을 현시하지 않았다.

아마도 물리학자는 시인의 경험이 물체의 표면에서 반사되어 튀어나온 빛의 파동에 불과하다고 시인을 설득할 지도 모른다. 

이 때 물리학자의 논증은 현상학적인 것이 아니다.

물리학자는 시인이 현실에서 직접 겪은 경험을 고려하지 않고 그 경험을 물리학적 용어로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시인의 경험은 물리학자의 물질 작용의 인과적 설명으로 모두 환원되지 않는다. 

하이데거가 세계를 단순한 물리적 대상의 총합으로 환원하는 데 반대하는 이유다.

...

이것은 된장을 물리적으로 분석하거나,

또는 된장을 화학적으로 분석해서 이해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구체적 삶의 세계를 고려해야 이해가 가능하다. 

제 아무리 훌륭하게 된장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더라도 시인의 아내가 왜 된장에 콩 잎을 덮었는가를 이해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이 맥락에서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의 삶이 이루어지는 장으로서의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삶의 장으로서 세계를 이루고 있는 구조적 계기와 요소들이 무엇인가 하는 점에 관심을 기울인다.

하이데거는 우리에게 세계를 직접 만나볼 것을 권한다. 

이것은 세계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이해하는 힘을 키우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현상학적 방법으로 세계와 직접 대면하라는 뜻이다. 

풀어서 이야기하면, 우리가 일상적인 삶 속에서 만나는 세계를 분석 대상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버마스(Habermas)는 하이데거 철학의 공헌을 과학에 의해 식민지화되어 가고 있는 생활 세계의 위기를 깨닫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찾는다.


하이데거가 지향했던 철학의 궁극적 과제는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다시 세우는 것이었다. 

그의 표현을 빌면 “존재의 물음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숨을 죽이며 연구한 것”이었지만, 그 후로는 긴 침묵에 빠져버렸다. 

그러한 존재 물음은 결코 제기하지 말아야 할 것, 또는 너무나 자명한 것, 또는 내용이 텅 비어서 정의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 결과 서양 철학은 잘못된 길로 빠지고 말았다. 

그 결정적 계기는 존재와 존재자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오류에 있다.

...

하이데거가 정의한 존재와 존재자에 대한 구분이 선명하게 파악되는가?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결코 실망할 필요가 없다. 

...

그는 이러한 현존재의 존재 방식을 ‘실존’이라고 말한다. 

그가 실존주의 철학자로도 분류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굳이 그를 분류한다면 서양 2500년 존재의 역사를 새로운 사유의 틀로 선보인 형이상학자라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해 보인다. 

...

신문도 거의 읽지 않았으며, 집에는 텔레비전 수상기도 없었다.

그는 글을 읽고 쓰고, 철학적 사유를 하는데 모든 시간을 보냈다. 

여기서 오점이란 하이데거가 나치에 부역한 사실을 말한다.

...

[슈피겔]이 집요하게 질문을 계속했지만, 

하이데거 역시 자신의 철학적 주장을 되풀이해서 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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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의 1889년생 동갑. 

하이데거

아돌프 히틀러.

토인비

채플린.

비트겐슈타인.

네루.

허블.

장 콕토.

김좌진.

홍사익.

야나기 무네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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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규어 로스.

십여년간 눌러놓았던 감성 어떤 한 부분을 되살려주는, 강렬한,


Posted by 메모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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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2000. 7. 19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1005000/2000/001005000200007191901070.html

[특별기고] 동인문학상 후보작을 거부한다

나는 714일자 <조선일보>를 우연히 보고서야 내가 지난 5월에 13년 만에 간행한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이 동인문학상의 심사대상에 올라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에 나는 책을 내고 나서 여러 신문사와 합동기자간담회를 하면서 계기가 되어 <주간조선><조선일보>에 인터뷰를 하게 되었고, 그 일로 `<조선일보>의 파쇼적 논지'에 반대하는 이들로부터 내 책을 낸 창작과비평사와 함께 싸잡혀서 질문과 항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 

솔직히 밝히자면 나는 시장에 내놓은 상품으로서의 책의 광고와 선전에 어느 매체가 동원되든지 알 바 없다는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책의 내용과 추구하는 가치는 변하지 않을 테니까. 따라서 내 책에 쓰여진 내용에 대하여 인터뷰에 응하는 것은 시장에의 대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시장에서 힘을 얻지 못한 문화 물건이 대중에 대한 영향력을 가질 수는 없다는 게 평소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군사 파시즘과의 결탁으로 성장한 <조선일보>침묵과 수혜의 원죄의식으로 동참하게 된 기득권층의 이데올로그로서 막강한 언론권력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시대에 사회의 기초 공리는 억압에 의하여 말살되거나 부인되었으며 그 반대의 가설이 산더미처럼 재생산되었다.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수구 언론이 우리의 역사발전을 위해서도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은 시대적 당위일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자본주의 시장을 향하여 `전업작가'로 먹고 사는 나로서는 책을 내놓고 다른 상품들처럼 광고와 소개는 하여도 그 지면에 글은 쓰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워 두고 있었다. 요즈음에 생각이 정리된 뒤에는 어떠한 빌미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쪽으로 생각이 굳어지고 말았다. 

왜 또 내가 해야 되냐? 하는 푸념도 나오고 귀찮으니 옆으로 비켜서 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역시 `앞장서서 편들기'는 작가의 옳은 밥 먹는 자세이기도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이른바 `안티 조선' 측이 소극적 진영주의로 `충실한 반대당' 식의 내부적 권력이 되어 버릴 위험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언론 개혁을 위한 구체적이고 대중적인 운동의 대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다시 내게 관련된 동인문학상의 심사경위로 돌아가자면, <조선일보>는 몇몇 작가 평론가들을 `종신 심사위원'으로 선정해서 `공개적'으로 심사한다고 한다. 심사위원들 면면을 살펴 보니 문단에 나온 지 38년이 되는 내게는 선배보다는 후배가 더 많았다. 심사의 대상이 된 후보자들도 수십년 차이가 나는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요즈음 <조선일보> 정치·경제·사회면에서는 종전보다 더욱 반개혁적이면서도, 문화면에서는 `다양성'을 보여 주려고 하는 교묘함을 보이고 있으며, 보다 이질적인 문인들에게는 단 몇 매짜리의 칼럼 한 편에 다른 신문의 무려 다섯 배 가까운 원고료를 지불하고 있다. 

어려운 시기에는 냉전적 공격과 터무니없는 폭로로써 `권력'을 누리고 이제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이를 유지해보려 하는 것인가? 

죽을 때까지 심사를 한다면 그 위원들과 <조선일보>는 앞으로도 수십년간 불변할 것인지. 앞으로 수십년 동안 수많은 미래의 심사 대상자를 동시에 관리하려는 것인지. 전망이 안 보이는 자들은 역사는 과거에서 지금까지 불변할 것이라고 믿겠지만, 하늘 아래서 역사와 사람의 가장 큰 특성은 변화에 있다는 것을 오늘도 우리는 보고 있다. 

문학상의 상업주의와 사이비 권력놀음 따위의 문제점이 지적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실상은 <조선일보>가 특정 문인 몇 사람을 동원하여 한국문단에 줄 세우기 식의 힘을 `종신토록'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무차별적으로 같은 잣대 위에 올려 놓고, 공개된 신문지상에서, 불공평하게도 의견을 내놓은 자들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은 채, 내용과 별 상관도 없는 말 몇 마디로 `탈락'이니 `잔류'니 하고 치워버리는 것은 누가 누구에게 부여한 권리인가? 무슨 경품 뽑기 대회도 아니고 불량품 가려내기도 아닐진대, 편 가르기와 줄 세우기 식의 사이비 권력놀음을 당장 걷어 치워라. 

심사에 동참한 동료 문인들에게도 엄중히 항의하건대, 나는 변변치는 않지만 떳떳하게 살 권리가 있는 한 사람으로서 더 이상 욕을 보이지 말아 주기를 부탁하는 바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문학상이 세계관의 한 표현일진대 나는 <조선일보>측의 `동인문학상'뿐만 아니라 현대문학에서의 동인의 위치에 대하여도 이견이 있는 사람이며, 따라서 귀측의 심사대상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일단 밝혀두려고 한다. 

2000719일 황 석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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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월간말.  2001년 184호.

동인문학상 거부합니다 

제32회 동인문학상 후보 거부한 공선옥 

작년 소설가 황석영이 후보를 거부해 동인문학상에 대한 시비가 거세지자 조선일보가 자존심이 상하긴 무척 상했나 보다. 올해는 좀 더 탄탄한 방법으로 ‘후보’들을 관리하고 나섰다. 지난 9월 3일자 조선일보에 동인문학상 후보작이 발표되고 다음 날 문화면에 신설된 「작가들은 말한다」라는 연재가 그것이다. 

소설가 공선옥씨가 자신의 작품(『수수밭으로 오세요』 여성신문사)이 후보작으로 오른 걸 안 것은 조선일보 문학 담당기자가 「작가들은 말한다」에 실릴 글을 공씨에게 청탁할 때였다. 하지만 점잖게 사양했다. ‘거부’라는 말조차 조심스러웠다. 문단 선배들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싶었고 그래서 “추천해 주신 분들께는 감사하지만”이란 말도 잊지 않았다. 이청준과 박완서는 “시골에 틀어박혀 아이 셋을 키우며 살아가는 작가의 투박하고 건강하면서도 동시에 힘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세계”라고 추천이유를 밝혔다. 

“기자한테 그랬다. 나 솔직히 돈은 탐난다고. (내가 거부한다고 하면) 비웃을지 몰라도 돈 때문에 떨어지는 감 받아먹으려고 한 줄로 나란히 서서 입 떡 벌리고 있긴 싫다. 작가가 작품으로 말했으면 됐지 구구절절이 뭘 더 말하라는 건가.” 

무엇보다도 공씨는 작가들로 하여금 직접 자기 글을 쓰게 하는 조선일보의 저의가 불쾌했다. 이에 대해 담당기자는 “작가가 직접 써야 재밌을 거 같아서” “불편하다면 기자가 대신 쓸 수도 있다”라며 설득했지만 공씨는 “그 의도란 게 뻔한 거 아니겠느냐”고 일축한다. 

거기에 글을 쓴다는 건 후보를 수락한다는 증명서류고, 나중에 수상거부로 일이 커지는 걸 막으려는 장치 아니겠나. 상 달라고 글까지 쓴 마당에 나중에 조선일보 비판은 어떻게 할 수 있겠나. 작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거다.” 

하지만 담당기자는 후보작을 발표한 기사가 이미 넘어간 상태라며 공씨의 거부의사를 지면에 반영하지 않았다. 공씨는 “상식선에서 결정했다”고 말한다. 

“일제시대 천황폐하 만세 부른 거나 전두환, 노태우 시절에 용비어천가 부른 거까지도 좋다 치자. 이건 견해가 다른 문제가 아니다. 조선일보는 마치 불특정 다수가 소수의 특정인을 미워하는 원시적인 폭력성 그 자체다. 그들은 보수가 아니다. 보수는 전통가치를 지키자는 건데 전통 중에도 좋은 게 많다. 하지만 그들은 무조건 자기들끼리만 잘 살면 된다는 사람들이다. 없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조금도 없다. 굶주리고 있는 북한 사람들에게도 퍼준다고 난리 아닌가.” 

담당기자는 “순수하게 문학적으로 생각해 달라”며 설득했지만 그조차 순수하게 들리지 않았다. 매사에 정치적인 의도를 깔고 있는 사람들이 작가더러만 순수하라니, 열네 명 중 그래도 리얼리즘 계열의 작가 하나쯤은 들어가야 구색이 맞는다고 생각했을까? 


‘줄세우기’식 조선일보의 작가관리  

공씨의 ‘동인문학상 사절’은 작가정신에 대한 천착에서 비롯되었다. 

“글쎄 작가… 작가… 작가는 ‘안다’는 사람들 아닌가. 지금 우리 사회는 질곡에 빠져 있다. 질곡이란 운신이 힘들다는 거다. 그렇게 단칸방에 사는 사람들의 숨통을 조금이라도 터주는 게 작가역할 아닐까. 장사가 잘 되는 신문에서 주는 상을 받거나 글을 쓰면 그 신문이 가진 독자만큼 작가는 독자를 확보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부유하게 살면 인간적으론 행복할지 몰라도 작가로선 불행이다.” 

작품과 작가는 따로 떼 놓고 볼 수 없다는 것이 공씨의 생각이다. 

“작가는 문학적 존재이자 사회, 정치적 존재다. 작가를 또 하나의 정부라 부르는 이유가 뭔가. 작가에게 정부를 넘어서는 권위가 부여되는 건 도덕성 때문이다. 원론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작가의 노력이 그래서 중요하다.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조금 양보하고, 또 있는 사람은 투명한 부가 유지되는 사회를 위해 작가가 향도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근데 도덕성 없는 사람이 도덕성 운운하니 도덕성에 대한 냉소만 남았다.” 

그런 점에서 문학상을 둘러싼 작금의 모습은 실망스럽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기금을 만들어 조용하게 줬음 좋겠다. 상이란 격려하자는 건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 박탈감 느끼게 하면서 받는 상은 문단 전체를 초라하게 만든다.” 

공선옥씨는 원고료만으로 먹고사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수입이 많아서가 아니다. 20만 원도 좋고 50만 원도 좋다. 그 돈으로 한 달을 어찌 사나 싶지만 그래도 네 명 식구가 살아진단다. “쌀만 있으면 되는데, 뭘.” 그동안 펴낸 책들에서 나오는 인세가 고정수입이랄 수 있는데 ‘없는’ 출판사 만나 이번 작품은 광고 한 번 ‘못 쳤는데’ 그 수입이 얼마나 될까 싶다. 

“그래도 돈(상금) 생각하면 하루에 기와집을 몇 채 올렸다 허물었다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나마 그 여지도 없어졌네(웃음). 없는 사람 마음이 그렇지 뭐.” 

하지만 다리가 후들거리게 떨리는 상이 아니라서 마음은 외려 가볍단다. 

(인터뷰가 끝나고 한 시간 뒤 공선옥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요지인즉, 작년에 한 번 조선일보에 시론을 쓴 적이 있는데 이런 말을 할 자격이 되겠느냐는 우려였다. 당시 담당기자의 청탁도 집요했지만 돈이 궁하던 차, 다음날 바로 고료(50만 원)을 준다고 해 장원사건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노라며 ‘마음의 불편’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기자는 설득했다. 동인문학상은 조선일보와 문단의 불편한 정도를 넘어 ‘위험한 관계’로 가는 훨씬 비싼 대가(5천만 원)인데 그 ‘줄서기’에서 이탈한 공씨의 자격은 충분하다고.)   

박형숙 기자 hspark@digitalm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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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2003/12/24 15:14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312/h2003122415134824160.htm

지난 18일 오후, 예전에 일했던 신문사의 문학 담당 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고 선배, 오늘 아침자 조선일보 보셨어요?” “안 봤는데요.” “선배 소설집이 동인문학상 후보에 올랐던데요.” “그래요? 별일이군요.” “어떡하실 거에요?” “글쎄요, 기사를 못 읽었으니…” “그럼 기사 읽어보세요. 제가 저녁에 다시 전화 드릴게요.” “다시 전화할 건 없고, 해 가기 전에 술 한 잔 합시다.”

어떻게 하겠느냐고 그 후배 기자가 내게 물은 것은 내가 조선일보에 대해, 그리고 그 신문이 운영하는 동인문학상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것을 그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조선일보를 보지 않는다.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 학을 뗀 이래 줄곧 그랬으니, 꽉 찬 6년을 조선일보 없는 세상에서 살아온 셈이다.

집에서만이 아니라 직장에서도 나는 이 신문을 보지 않는다. 아침에 내 사무실 책상 위에 놓이는 신문은, 내가 매일 한 귀퉁이를 짧은 칼럼으로 채우는 한국일보를 제외하면, 흔히 ‘한경대’라고 불리는 비교적 중도적인 매체들이 전부다.

언론계에 한 발을 걸치고 있는 처지에, 우리 사회에서 실팍한 영향력을 지닌 신문을 아예 외면하는 것은 직업적 불성실이라 비판 받을 만도 하다.

그러나 나는, 세칭 안티조선 운동에 공감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조선일보에 아예 무관심해지는 것이 그 신문을 꼼꼼히 읽으며 비판하는 것 못지않은 효과적 실천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나는 왜 안티조선 운동에 공감하는가? 언젠가 다른 자리에서 썼듯, 그 신문이 수구 냉전 복고세력의 선전국일 뿐만 아니라, 신문 지면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기 쉬운 글쓰기의 권력화를 가장 비도덕적으로, 현저히 정치적으로 드러내왔다는 판단 때문이다.

나는 왜 동인문학상에 비판적인가?

역시 다른 자리에서 지적했듯 그 상이, 특히 심사위원단의 종신화와 상금의 파격적 인상 그리고 상시적 독회 평가의 기사화를 뼈대로 한 세 해전의 체제 개편 이래, 한국 문단에 대한 조선일보의 아귀 힘을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후배 기자와 통화를 마치고 자료실로 가 참으로 오랜만에 조선일보를 펼쳐 보았다. 문화부 김광일 기자의 이름을 단 그 기사에서는 호의가 배어났다.

그 기사의 호의적 분위기는 나 자신 겁 없이 덜컥 내놓고 부끄러워하고 있는 소설집에 대해 심사위원들이 격려차 건넨 의례적 덕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심사 독회에서 나온 쓴소리들을 선의로 생략해버렸을 김 기자의 배려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 분들의 호의에 고마움을 표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작품의 됨됨이로 보나 조선일보에 대해 취해온 입장으로 보나 도저히 이 상의 수상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의 이름을 거론하고 그 얼굴을 지면에 실은 데 대해 조선일보 쪽에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조선일보와 동인문학상에 대해 던져온 비판적 발언들을 김 기자나 심사위원들이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글을 쓰며 한 움큼의 유쾌함도 내가 누릴 수 없는 것은, 주겠다는 상을 거부하겠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심사 독회에 올랐을 뿐 수상자로 선정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데 거부라니, 내 꼴이 얼마나 우스운가?

그렇다고 제 작품이 제가 비판해온 문학상의 후보에 오른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체하고 있는 꼴은 또 얼마나 우스울 것인가? 나쁜 뜻이야 없었겠으나 결국, 조선일보 지면은 나를 조롱한 셈이다.

비록 선의에서라고 할지라도 이런 조롱의 장면을 만들어낸 분들께, 나는 이 상과 관련해 내 이름이 거론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뜻을 정중히 전하고 싶다. 끝으로 사소하다면 사소하달 지적을 하나 하고 싶다.

김 기자는 내 소설집 제목을 ‘엘리아의 노래’라고 썼으나, 그것은 ‘엘리아의 제야’로 고쳐져야 할 터이다. 제야가 코앞이다. 두루 근하갑신(謹賀甲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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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카테고리가 오직 한 가지 색깔의 정치 테제아래 종속되어 기사화 된다는 것.

오히려 반대로, 인문 철학 예술 문화의 토대위에 정치적인 것들이 만들어져야 되는 것인데.

모든 철학 인문과 예술,,,,그 내용이 정치적 동기를 위해 복무하는 글쓰기.



Posted by 메모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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