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의 앞으로의 인생이 그려짐.
한 회사의 자본가나 CEO의 대리인으로서 고용된 후.
그 경직된 리더쉽 방식 고수.
감성적으로는 자기 충족적인 그 폐쇄 구조 속에서,
몇몇 문학적인 문장을 인용하고
적당한 레토릭과 섞어 자신의 감성을 되새김질하는.
의식적으로 끄집어내어 스스로에게 문제 제기하지 않는 이상,
마음 깊은 곳엔 그 충돌, 불일치에서 나오는 괴로움이 지속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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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얘기한, 백지연 피플인사이드ㅡ 이석기 인터뷰. 2012. 5.
흥미롭게 봄.
역시 예상했던 대로 종교적 필을 물씬 풍기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당원들은 보통 사람들하고 다릅니다. 정말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인 새로운 세상 돈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이 중심인 소박하게 일 하는 사람들이 주인된 세상을 건설하려고 뛰어든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이 진보 정당이 근간은 "진성당원제"라고 우리나라의 유일한 정당입니다. 당원들에 의해서 운영되는 정당이거든요
백지연: 당원이 굉장히 중요하신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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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연: ,,, 국민을 대표합니까, 당원을 대표합니까? 이건 제가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 여쭤보는거예요
이석기: 네, 전 구분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려 한 것은요. 그게 좀 적절한 비유는 아닌데 옛날에 TV에 무슨 체험 생활 현장 이런 거 있잖아요. 노동하면서 근로하는게 힘들다 땀 흘리고 그 사람들에게 통용되는거다. 우리 진보 정당의 당원들은 다 국민이에요. 그러니까 당원과 국민을 구분하는 것 자체를 전 인정하지 않습니다.
백지연: 굉장히 명확히 할 부분은 있어요. 예를 들어서 여론에 대해서는 여론의 움직임이 이러해도 우리 진성당원의 뜻이 반하면 나는 사퇴할 수 없다.
이석기: 아니 사퇴할 권리가 없는 거예요. 정확히 말씀을 드리면 제가 스스로 사퇴할 권리가 없어요. 우리 당원들에 의해 선출된 사람이면 해임권한도 당원들에게 있는 겁니다.
백지연: 네, 그 말씀은 당원으로서 제가 수긍이 됩니다. 그런데 아까 말씀하실 때 우리 당원들은 참 특별하거든요 말씀하셨는데, 통합진보당 뿐만이 아니라 새누리당 민주당 어느 당에도 소속되지 않은 당원들 아닌 분도 굉장히 많으시거든요. 그분들 진짜 특별해요. 진짜 열심히 일하세요.
이석기: 네, 맞습니다.
백지연: 그분들의 생각도 굉장히 중요한 것 아닌가요?
이석기: 그 점은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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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이석기 얘길 들어보면,)
세상에 대한 불신같은게 깔려있고 자기네 것은 합리화시켜서 논리를 만들고.
그걸 집요하게 물어보면 감성적인 걸로 회피. 당원, 사람,,, 이런 식으로.
외부에 대해 물어보면 악마와 싸우는 천사의 개념.
,,,
사람이란게 참 신기한거 같다.
,,,
경직된 그 내부의 연대의식.
종교적 상태까지 연결.
자신들 외의 외부세계는 적으로 돌리고,
현실에서 당장은 힘을 발휘 못해도 우리는 고귀한 정신을 갖고 있고.
고귀하게 그 가치로서 살아남아야한다.
유리알 같은 맑은 정수를 자신들이 갖고 있다는,,,
세상은 적으로 보고,
우리는 고귀한 것으로 보고.
고귀한 가치와 동기.
끈끈한 정.
눈물 글썽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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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탈북 그 후"
새터민 청소년 생활공동체 "우리집". 여름. 캠프.
탈북 청소년 얘기:
북한에선 친구 관계 정말 친하다.
근데 남한에선 다른 사람을... 자기가 어떻게 되기 위한 수단, 어떤 과정으로 생각하는거 같다.
앞으로의 소망ㅡ 정말 OO한 친구를 사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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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재영 /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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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2500년 전에 플라톤이 물었던 존재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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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이렇게 말을 비비 꼬았을까?
대체로 언어를 변형시키는 것은 시인의 몫이지 철학자의 몫은 아니다.
때로 시인은 자신이 원하는 말을 찾지 못하면 말을 비튼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시어에는 일상적 언어와는 다른 어떤 울림이 있다
하이데거는 철학이 시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철학적 사유는 익숙하고 명료하며 질서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낯설고 모호하며 당혹감을 안겨준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철학이 명료한 체계를 우선하는 과학보다는,
모호하지만 울림을 주는 예술에 보다 가깝다고 말한다.
그는 시작(詩作)을 ‘철학의 누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또한 그는 독일의 낭만파 시인 노발리스(Novalis, 1772-1801)의 시구를 빌어서
“철학은 향수이며, 어디에서나 고향을 만들고자 하는 하나의 충동”이라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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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 이후의 철학은 이 점을 망각하고 잘못된 길로 접어들었다고 진단한다.
우리는 철학에 ‘관해서’ 이야기했을 뿐,
‘철학에서부터’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세계는 단지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아니다.
과학적 탐구만으로 세계는 온전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간파한 것처럼 세계는 숨기를 좋아한다.
더욱이 과학적 탐구 방식으로는 결코 해명되지 않는 존재 양식을 가진 존재도 있다.
바로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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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는 철학적 사유의 근원을 존재에 대한 물음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그는 철학으로부터 시작하는 물음은 항상 형이상학적 물음이라고 강조한다.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형이상학적 물음은 가장 궁극적이고 포괄적이다.
철학은 오로지 철학함으로서만 존재하며,
그 점에서 철학은 결코 형이상학적 물음과의 대면을 회피할 수 없다.
세계를 온전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하이데거는 현상학을 동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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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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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적 시각에서 볼 때, 이러한 사물은 분자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생물학의 눈으로 볼 때, 강낭콩 잎과 구더기는 DNA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시인의 경험에서 원자나 DNA는 자신을 현시하지 않았다.
아마도 물리학자는 시인의 경험이 물체의 표면에서 반사되어 튀어나온 빛의 파동에 불과하다고 시인을 설득할 지도 모른다.
이 때 물리학자의 논증은 현상학적인 것이 아니다.
물리학자는 시인이 현실에서 직접 겪은 경험을 고려하지 않고 그 경험을 물리학적 용어로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시인의 경험은 물리학자의 물질 작용의 인과적 설명으로 모두 환원되지 않는다.
하이데거가 세계를 단순한 물리적 대상의 총합으로 환원하는 데 반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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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된장을 물리적으로 분석하거나,
또는 된장을 화학적으로 분석해서 이해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구체적 삶의 세계를 고려해야 이해가 가능하다.
제 아무리 훌륭하게 된장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더라도 시인의 아내가 왜 된장에 콩 잎을 덮었는가를 이해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이 맥락에서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의 삶이 이루어지는 장으로서의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삶의 장으로서 세계를 이루고 있는 구조적 계기와 요소들이 무엇인가 하는 점에 관심을 기울인다.
하이데거는 우리에게 세계를 직접 만나볼 것을 권한다.
이것은 세계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이해하는 힘을 키우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현상학적 방법으로 세계와 직접 대면하라는 뜻이다.
풀어서 이야기하면, 우리가 일상적인 삶 속에서 만나는 세계를 분석 대상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버마스(Habermas)는 하이데거 철학의 공헌을 과학에 의해 식민지화되어 가고 있는 생활 세계의 위기를 깨닫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찾는다.
하이데거가 지향했던 철학의 궁극적 과제는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다시 세우는 것이었다.
그의 표현을 빌면 “존재의 물음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숨을 죽이며 연구한 것”이었지만, 그 후로는 긴 침묵에 빠져버렸다.
그러한 존재 물음은 결코 제기하지 말아야 할 것, 또는 너무나 자명한 것, 또는 내용이 텅 비어서 정의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 결과 서양 철학은 잘못된 길로 빠지고 말았다.
그 결정적 계기는 존재와 존재자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오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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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가 정의한 존재와 존재자에 대한 구분이 선명하게 파악되는가?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결코 실망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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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러한 현존재의 존재 방식을 ‘실존’이라고 말한다.
그가 실존주의 철학자로도 분류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굳이 그를 분류한다면 서양 2500년 존재의 역사를 새로운 사유의 틀로 선보인 형이상학자라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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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도 거의 읽지 않았으며, 집에는 텔레비전 수상기도 없었다.
그는 글을 읽고 쓰고, 철학적 사유를 하는데 모든 시간을 보냈다.
여기서 오점이란 하이데거가 나치에 부역한 사실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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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피겔]이 집요하게 질문을 계속했지만,
하이데거 역시 자신의 철학적 주장을 되풀이해서 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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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의 1889년생 동갑.
하이데거
아돌프 히틀러.
토인비
채플린.
비트겐슈타인.
네루.
허블.
장 콕토.
김좌진.
홍사익.
야나기 무네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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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규어 로스.
십여년간 눌러놓았던 감성 어떤 한 부분을 되살려주는, 강렬한,